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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영화사100년] 봉준호의 <괴물>(2006) 현대 대한민국영화의 정점을 만들다 천만 관객 시대 | 2005~2010 by.정종화(대한민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장) 2019 ~처럼
    카테고리 없음 2020. 2. 2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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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전 죠은화(대한민국 영상 자료원 연구 전시 팀장)20하나 9​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 영화 산업 2000년대 초 대한민국 영화계에 분 산업의 활기는 2006년을 정점으로 찍었다. 2003년부터 80개대를 기록한 대한민국 영화 제작 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하나 00개를 넘어섰다. 200한 나이 50Percent을 넘어 2004년부터 60Percent대에 육박한 대한민국 영화의 점유율도 마침내 2006년 63.8Percent를 기록했다. 현재(20하나 8년 기준 50.9Percent)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된 비율이었다 이렇게 2006년이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이고 주고 욧다묘은, 2007년 이후에는 위기도는 조정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2006년 7월 긴 의논 끝에 진짜 결국 스크린 쿼터 즉 대한민국 영화 의무 상영 제도가 731로 축소됐고, 마침 지주도 둘도 없다 스스로 할리우드 블록 버스터 공세가 거세지는 대한민국의 영화 관객은 줄어 수익률과 수출 실적도 하락했다. 2007년 50Percent에 내린 대한민국 영화의 점유율은 2008년 42. 하나 Percent까지 떨어졌다.​ 2007년부터 시작된 산업의 하락세가 불과 2년 만에 극복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었다 2009년 시장과 관객의 신뢰를 회복하면서 20의 하나 한살부터는 극장 관객과 매출액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대한민국 영화도 4년 만에 다시 시장 점유율 50Percent대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20하나 2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영화 산업은 관객 수, 매출, 수익성 면에서 도약하고 불황의 그항상그렛도우쯔을 완전히 탈피했다. 대한민국 영화의 점유율도 다시 60Percent대에 이르게 된다. 20하나 3년 영화 산업은 다시 호황을 맞았을 것이다.​'만 영화'가 이야기하고 뒤진 2004년<실미도(강 우속, 2003)와<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에서 시작된 천 만 관객 영화가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상승 국면과 연동되어 등장한 것도 그와은심로웅 지점이었다 2005년<왕의 남자>(이준·요. 하나, 200만, 2006년 괴물(봉)이 하나 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0년대 중반 영화 산업의 활력을 대변했다. 그리고 2년간의 체질 개선을 거친 2009년<해운대(윤제균)이 만 영화의 대열에 다시 합류했다. 따지고 보면 천만 영화가 등장한 것은 산업이 회복됐다는 신호가 강해진 시기다. 그 뒤에도 20하나 2년<도둑들>(최동훈)<광해, 왕이 된 남자>(츄챠은 민), 20하나 3년<7번 방의 선물>(이 화은교은)<변호인>(양우속), 20개 4년<명량>(킴항밍)<국제 시장>(윤제균), 20하나 5년<암살(최동훈)<고참>(류・승왕)등 매년 2개씩의 천 만 영화가 쏟아지고,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저력을 펼쳤다. 대한민국 영화의 천만관객 동원은 무엇보다 영화산업의 양적 규모를 확대하고 나쁘지 않은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큰 것은 분명하다.사실 천만 영화는 제작사의 역량이 나쁘지 않아 배급사의 물량 공세만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 넓은 층의 관객들에게 1규정한 공감을 얻어야 한다 동시에 공개 시점 대한민국의 사회 분위기 괜찮고 관심도 마찬가지야 한다. 어쩌면 천만이라는 숫자는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선 1종의 현상 1의 가능성이 크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1프지앙아의 장르 나쁘지 않은 경향으로 1별 어려운 각각 당대의 복잡한 맥락이 새겨지는 소리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괴물은 대형 배급 회사가 하나 50억원의 총 제작비를 맞고 스크린 독과점 문제까지 발발시킨 영화였지만, 영화적으로는 다른 만 영화가 목표로 한 대중적 화법에서 가장 벗고 나쁘지 않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봉준호라는 특별한 감독이 산업과 행복하게 결합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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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광 출신 감독, 글로벌 영화로 본인 아가다 데힌민의 영화 청년은 어떻게 감독이 될까. 봉준호는 대한민국에서 감독이 되려는 영화청년들에게 하본인의 롤 모델이 된 감독이었다. 영화광으로 출발한 그가 열어준 길은 현재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그의 구체적 행동뿐만 아니라 독특한 감각의 영화세계, 양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나 969년생의 봉준호는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데힝 대한민국 영화 아카데미 하나하나기에서 입학해서 영화를 공부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한개 단편 영화<백색인>(하나 994)을 작성하고 영화 아카데미는 프레임 속의 기억>(하나 994)과 졸업 작품으로<지리멸렬(하나 994)을 연출했다.다음 충무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하나고프 가지 이유>(유진 장·현수, 정지영, 박철수, 박종원, 장·길수·강우석, 하나 996)에서 각색과 연출부를 경험했고,<모텔 선인장(박기영, 하나 997)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지냈으며<유령>(민 뵤은쵸은 하나 999)의 각본도 썼다. 많은 감독이 그랬듯이 그도 6년 정도 그냥 참고 보테테로울 거친 것이었다 감독 데뷔 기회는 후자의 2작품을 제작한 차 이순재의 우노 필름에서 얻었다. 한 대학 가끔 강사가 하나우킨 소동을 통해서 데힝 민국 사회를 비꼬고 본다<플랜더스의 개>(2000)는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인상적인 데뷔작에서 계속 회자되는 작품이었다 특히 봉준호 영화세계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꼭 확인해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2003년 화성 연쇄 살인 문제를 하나 98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해결한<살인의 추억>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하고 연출의 역량을 인정 받고 있어, 2006년 세번째 장편 괴물도 국내를 넘은 흥행과 비평적인 지지를 받아 봉준호는 2개세기데 힌 대한민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2009년 네번째 장편<어머니>는 모성을 미스터리의 소재로 데힝 민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고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20하나 3년 450억원 규모의 다국적 프로젝트<설국 열차>로 글로벌 영화 신에게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20하나 7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옥 저>로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조 썰매 타고 진출하기도 했다. 봉준호는 이제 대한민국 영화를 넘어 그의 이름 자체가 영화 브랜드가 된 국제적인 감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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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괴물>의 탁월한 지점은 '괴수 영화'라는 장르적 표면(환상)과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발언(리얼리티)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잡아낸 것이다. 이는 영화 오프닝부터 정교하게 설계된다. 첫 장면은 2000년 시점의 미 8군 용산 기지 영안실, 감독은 수평 구도의 미쟝센과 인물의 어깨 그데모쇼쯔토을 활용하면서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이끈다. 2000년 실제 발생한 문재인)주한 미군 한강 독극물 방류 뭉지에울 직접 인용한 영화는 즉석 2002년 한강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돌연변이 물고기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옮긴다. 그리고 2006년 한 중소 기업 사장이 한강으로 떨어지고 자살하는 장면을 보인다. 그는 극중 동료/관객들에게 끝까지 둔한 애들. 잘살아라는 사연을 남기고 한강 아래로 들어간다. 한국의 소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더디게 살고 있는가.빗물이 떨어지는 수직구도의 한강을 배경으로 괴물 제목이 본인이고, 영화는 한강변 매점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노란색 머리의 남성 강두(송강호)를 보여준다. 아버지 희봉(변희봉)이 운영하는 매점에서 딸 현서(고아선)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한눈에 봐도 좀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강두는 딸에 대해서만 절대적인 애정을 보이는 인물로, 앞으로 영화가 진행하면서 현서와 관련된 일이라면 순간적으로 현명해지고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희봉과 현서가 매점 안에서 고모남주(배두 본인)의 양궁대회 중계를 보는 동안 한강변에 괴생물체가 나타난다. 한강을 찾은 시민과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낀 에토우는 이들과 함께 몬스터에게 음식을 던지는 등 장난을 친다. 우매한 대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평구도가 인상적인 장면이다. 사라진다고 소견한 괴물이 구역에 올라가 공격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한낮 살인의 아수라장이 되는 와중에서 영화는 한강다리 위에 있는 버스안 할머니의 시각으로 그 전경을 보여주며 실감나는 느낌을 놓치지 않는다. 강두는 현서의 손을 잡고 놓치고 현서를 꼬리에 감은 괴물은 한강 속으로 사라진다. 희생자 가족이 집결한 단체장례식장, 희봉의 이야기대로 현서 덕분에 남주와 남동산 남일까지 온 가족이 모인다.죽기 살기로 현서를 찾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강두네 가족이다. 2014년 4월 전 국민의 비극이 된 문재처럼 정부 시스템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국민의 생존을 방해할 뿐이다. 시민들도 하나의 행동은 고사하고 느낌적으로도 타인의 불행과 연대하지 못한 채 장터우 가족의 사투를 방관한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스토리가 더 적절할 것이다. 이는 전광판 TV 뉴스를 보며 횡단보도에 서 있는 퇴근길 직장인들의 모습에서 압축적으로 묘사된다. 또 수평구도를 활용한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실체도 없는 바이러스 보도에 이목을 빼앗기고 내 안부를 걱정할 뿐이다.과연 영화 속 괴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정부주의 혹은 미국이라는 패권국에 대한 비판일까. 아니면 자각하지 못하는 대중, 개인의 이기심, 본인 우리가 휴머니즘의 상실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복합체가 괴물일 것이다. 권력 피라미드 하층부에서 수평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민중은 괴물에게 붙잡히는 순간 수직구도의 하수구에 빠져 살아서 본인을 떠나지 못한다.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한강에 빠져 자살한 남성이 경고했듯이 한국의 소시민들은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과인만 중시하다 계급구도의 밑바닥으로 하강하다 죽음을 맞는다. 영화가 절정을 앞둔 순간 괴물은 현서와 남아를 삼킨 채 다시 지역으로 올라온다. 결미 괴물을 물리친 것은 현서를 다시 만 본인이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진한 강두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은 현서의 시신을 찾는다. 결국 감독은 해피엔딩을 선택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눈이 내리는 한강변의 매점이다. 요즘 강두는 현서가 돌보던 남자 아이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러나 새로 가족을 지키는 사람들은 여전히 총을 놓지 못하는 검은 머리의 강두다.​


    현재데 힌 대한민국 영화는 첫 50억원 이상의 고 예산을 투여한 대작 영화가 안 나오게 등장하지만 2006년<괴물>이 만들어 낸 정상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지점은 바로 대힌민국 사회에 대한 발언과 작가주의적 연출을 흔들림 없이 밀어붙여 자신 있게 천만 이상의 관객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것, 즉 작품성과 흥행성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는 의미의 성취다. 감독의 발언은 선동이라기보다는 세련된 우화에 가까웠고, 섬세한 연출 스타일은 미학으로 승화돼 결과적으로 대중상업영화의 오랜 경계까지 무너뜨렸다. 최근 천만 영화라는 욕망을 안고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과연 <괴물>이 도달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일까. 흥행 성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주목 받지 못하는 고 예산 영화가 반복되는 현재는 예기에 산업의 양적 성장을 질적 수준으로 전환시킨 첫 3년 전의 괴물을 표현할 시점인 것이었다 ​ 20첫 6년 7월호부터 시작한 '데힝 민국 영화 회사 최초의 00년'연재를 방 한 20회보다 빨리 첫 8회로 마치게 됐다. 데힝 대한민국 영화 제작이 아내 sound 꺼냈다 킴도상의 연쇄극<의리적 구토>(최초의 9첫 9)에서 2000년대의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의 작품까지, 이 연재는 각 5년의 시기마다 눈여겨봐야 할 감독과 그 영화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예술영화보다는 대중영화라는 장에서 작가주의를 견지하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소견하는 감독을 선정했고, 대체로 그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업영화로 기록된 경우였다. 20최초 0년대를 대표하는 두 감독과 영화를 선정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소견을 가지는 것이다. 연재 초기부터 상념을 멈추지 않은 20최초 0년대 이후 두 감독 선정 작업을 일단 유보해도 좋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물론 필자도 여러분이 떠올리는 몇몇 감독들을 소견했고 그들이 훌륭한 작품을 선보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최초 0년대의 박찬욱, 퐁쥬 노처럼 대중 영화와 작가 주의 영화의 경계를 감춘 감독이 등장했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장하기 어렵다. 남은 숙제는 다른 땅에서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이 글을 마무리한다. 그동안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봉준호 #송강호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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